백제도 망했다? 38

제38화 때로는 천상(天上)의 곡옥을 흔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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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명 입센
수강일수 180일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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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8화


 때로는 천상(天上)의 곡옥을 흔들다가 


 "강 건너라면……어디?……".

 "분홍이에요. 이쪽은 언니구요."

 "달래라고 합니다."

 "저는 비거라고 하지요."

 "예? 그럼 고기 잡는?…… 그게 정말입니까?"

 

 달래와 분홍은 그제야 얼싸안고 울었다.

 비거가 달래와 분홍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시간 제신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낭운화와 분홍이 그토록 찾는 제신.

 

 그는 아리수 고량부리 나루 막사에서

 조생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쪽 동태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곡물창고를 찾지 못하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네."

 "신라도 신라지만 우리도 군량이 떨어져 갑니다."

 

 "이번에도 모두 죽었겠지?"

 "아마도........."

 "아까운 놈이었어."

 "그러나 대장군님 옆에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중죄를 졌나?"

 "두 형이 나라를 송두리 째 엎으려고 했답니다. 조정의 독고가 그걸 알면 아무리 대장군님이라고 하여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말이 부마지 이젠 부마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죽고 없는 처, 난 부마가 아니지."

 "더구나 대장군님 막하인 연환 장군은 독고와 사촌지간입니다.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네. 사사건건 내게 반기를 드는 걸."

 "오히려 대장군님 막하보다 더 많은 병졸이 따르고 있습니다."

 "나야 끈 떨어진 연. 독고를 등에 업었으면 겁날 게 없겠지."

 "세상 인심은 그렇게 변합니다. 공주님이 거염에게 당하지만 않았어도..."

 "그 얘긴 그만!"


 제신이 손을 들었다.

 조생이 읍을 했다.

 

 "일단,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태 기다렸다."

 "육지면 몰라도 이제 물이 풀려 우리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목표는 고구려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신라의 거염은 내가 처단한다."

 "모두 죽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병력은?"

 "우리가 삼 천, 거염도 몇 천 명이 채 되질 않습니다."

 "곡물창고만 날려버리면 거염을 쓸어버릴 수 있다" 


 흰 수염 날리는 신라 장군, 거염의 막사.

 거염과 부관 길상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다 죽었지?"

 "한 놈이......"

 "그 때 그 놈이지?"

 "아주 출중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사로잡아야 한다."

 "강변을 이 잡듯 뒤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번에는 도모해야 한다."

 "백제 병력은 우리의 배가 넘습니다."

 "싸움은 병력 수로 하는 게 아니야."

 "아직도 백제의 수군은 고구려와도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길상이 멀거니 거염을 쳐다보았다.

 거염은 제신과 맞붙으면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았다.


 "포기하면?"

 "우리는 더 이상 북진할 수 없습니다."

 "삼국 통일은 커녕 우리 신라의 안녕마저 장담할 수 없겠지?"


 "술수가 아니면 지금의 우리 신라로서는 무망한 일입니다."

 "더구나 제신은 백제 제일의 장군이다. "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응?"

 "우리 신라가 자주 애용하는 방법?"

 "이간질?"

 "좋게 말하면 외교술입니다.우리 신라가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여태 후진인 신라.

 그래도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교묘하게

 이곳 아리수 유역을 일부만이라도 차지했다.


 "그렇다면 완벽한 속임수가 필요해.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제신과 무달은 지금 삼국의 장군 중에 최고의 장군들이다. 그만큼 이곳이 중요한 요충이다."

 "그런데 삼국의 장군 중에 최고는 바로 대장군이라는 민심이 퍼져있습니다."


 "그건 우리 간자들이 일부러 퍼뜨린 말이지."

 "그래서 그들도 대장군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나도 늙었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순진한 고구려의 무달을 이용하시면  제신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무달이 누군가? 백제의 제신이 누군가? 그들은 삼국을 통틀어서도 명장 중의 명장이다. 우리의 꼼수를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  

 "사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응!?"

 "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사자를 보내시면...... 제신은 지금 대장군을 쓸어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염은 무달을 떠올렸다.

 무서운 인간, 무달이 이곳으로 부임한다고 할 때부터

 앞 날이 캄캄했다.


 "그의 막하인 조생 또한 보통 장수가 아니다." 

 "우리야 밑져야 본전이지요. 무달과 제신에게 똑같은 정보를 주면."

 "이를테면?"

 "무달에게는 백제를 치라하고, 제신에게는 무달이 쳐들어온다고 하면......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무달이 쳐들어온다는데 제신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을까요?"

 "한 번의 전투도 없이 요충인 고량부리현 인근을 무달에게 넘겨준 제신이다. 나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우리 말을 신용할까?"

 "신용할만한 사람을 찾아야지요."

 "누구?"

 "흠운 대장군!"

 "뭐야?"

 

 그 전설의 흠운 대장군.

 그가 살아있는가?


 때로는 천상(天上)의 곡옥을 흔들다가

 끝내는 파도 위에 부서진 하늘의 별꽃을 줍는 날들

 눈 앞은 언제나 사과꽃 서천(西天), 그대의 마을

 그러나 다가가면 발을 막는 전쟁이란 저 징검돌다리.


‘전쟁이란 저 징검돌다리, 전쟁이란 저 징검돌다리, 다가가면 발을 막는.’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자꾸만 흐려져 가는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눈물이었다.

 노복(奴僕) 경민으로부터

 선례(善禮)의 서찰시를 은밀히 전해 받은

 흠운(歆運)은 비로소 그녀를 생각했다.


 정확한 눈기약 한 번 주지 못했던

 자신의 무성의를 탓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경우(慶宇)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도 마음을 정하고 말았다.

 설령 오늘 전장에 나가 내일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만나야 한다.

 그리고는 달빛이었다.


 두 남녀가 솔밭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오직 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가을걷이를 눈앞에 둔 들판은

 빈 곳 하나 없이 가득가득 들어찬 열매들로

 눈부신 황금색 일색이었다.


 새들은 저희들끼리 어디론가 날아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풀벌레들의 함성이 천지를 파도치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언뜻언뜻 터진 엷은 구름 아래를 꿈꾸듯 걸어가는

 네 개의 팔,

 네 개의 다리.


 순간순간 내리 퍼붓는 일월찰라의 햇빛,

 그 햇빛의 시간을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얼마나한 햇빛이 그렇게 죽어갔을까?

 두 청년은 줄곧 말문을 열었다.


"북쪽 고구려와의 싸움보다 힘들겠지?”

 "백제가 더 힘들지!'


 정말 서로 할 말이 있었다.

 그러나 눈은 먼 곳,

 산문을 향하고 음성은 바람을 갈라내고 있었다.


 선례에 관한 말이 없었다.

 타박타박 그들의 마음을 재촉하는 발자국 소리만이

 한낮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자네는 안 가도 좋아."

 "자네가 가는 전장에 내가 안 간 적 있나?"

 "그래. 자네 덕분에 살았지."

 "미안하네."

 "우리끼리도 그런 말을 해야하나?"

 

 한참만에 도착한 곳.

 두 청년이 빙긋!


 마을이 아스라히 내려다 보이는 산중턱.

 나란히 앉았다.


 "많이 죽겠지.”

 "벌판에서 싸우니까."


 두 사람 옆으로는 온통 일렁이는

 이름모를 풀꽃이었다.


 한동안 둘은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보이는

 마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 이르게 연기가 오르는 마을 위로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색색의 낙엽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곧 겨울이 오겠지.”

 "오겠지."


 둘은 헛깨비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로 하기 싫은.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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